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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M

올해도 블루 크리스마스


푸른새벽 - Blue Christmas (2012)

 

며칠 전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위해 캐롤 음악을 소개하려고 시디장을 뒤졌다. 딱히 마땅한 음반이 없었다. 원채 캐롤음악을 거의 듣지 않은 탓이다. 그러다 푸른새벽의 캐롤 음반인 <Blue Christmas>를 구석에서 찾았다. 흔한 캐롤 음악 같지 않아서 처음에는 잊고 있고 있었다. 해체 후 6년만에 나온 이 음반은 소설가 김연수와 같이 작업을 해서 화제가 됐었다. 작은 앨범처럼 생긴 이 음반의 부클릿에는 김연수의 단편 9편이 실려 있고 시디에는 푸른새벽의 음악이 5곡 들어있다. <Blue Christmas>라는 타이틀답게 우울하고 쓸쓸하면서 몽환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집에 틀어박혀 있는 방콕족이 듣기에 안성맞춤인 음악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별 일 아니긴 하지만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음반이기도 하다.

 

딱 2년 전 이날은 <Blue Christmas> 앨범을 낸 푸른새벽의 첫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그때 나는 홍대에서 기타레슨을 마치고 그 공연을 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연락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요즘 말로 우리는 썸 타는 관계 같은 거였다. 우리는 어쩌다 우연히 만나, 좋은 감정으로 몇번 봤고, 전화와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남들처럼 기억에 남는 몇가지 일들을 겪었는데, 갑자기 뭔가가 어긋나고 오해가 생기더니... 그냥 연락만 하는 채로 지내게 되버렸다. 당시에 그 사람 생각만 하면 애틋하고 그리웠던 걸 보면 감정은 진짜였는데. 왜 이런 관계가 되버렸는지 겁쟁이처럼 물어볼 용기도 마음도 차마 낼 수가 없었다.

 

그 날 그 사람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뭐해요?" 대꾸를 몇번 했다가,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랬는지 감정소모를 참을 수가 없었는지 소심하게도 나는 하면 안될 말을 해버렸다. "일찍 집에 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에요. 기분이 별로거든요" 왜 기분이 안 좋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그냥 대선과 연말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미안하다는 카톡이 왔다. 왜 자기가 미안해 하는거지... 알았다고 했더니 계속 미안하단다. 역시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어서 미안해하지 말라는 대답을 해버렸다. 그런 의미없는 주고 받음의 반복,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고 있었고 서로에게 엇갈리는 카톡을 날렸으며 서로의 시간를 그저 낭비하고 있었다. 나도 그랬고 그 사람도 그랬고,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있어 무척 서툴렀고 어려워했다. 나는 우리가 그저 그런 싱거운 관계로 끝날 것임을 예감했다. 

 

집에 왔더니 주문했던 푸른새벽의 <Blue Christmas>가 도착해있었다. 푸른새벽으로부터 위로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한동안 나는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마다 이 음반을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그 사람도 홍대에 있었다고 했다. 내가 푸른새벽의 공연을 보려고 시간을 떼우며 홍대거리를 해맸다면 어쩌면, 만약에, 그 사람과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MAYBE.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Blue Christmas>를 들으며 2년이나 지난 이런 부끄러운 일을 쓰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청승이다. 아무튼 다시 음반 얘기를 하자면 쓸쓸하고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당신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내줄 음악이니 한번 찾아 듣기를 권한다.

 

어쨌거나 믿고 싶진 않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세상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가족, 친구, 가까운 사람들과 더 함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과 기쁨을 나눠야 한다. 혹시나 잊은 일이 없는지 주변도 한번 둘러보자... 그런 훈훈한 결말로 이 글을 급히 정리하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그럼 이만 총총.




 

푸른새벽 - 깊고 고요한 밤



푸른새벽 - Merry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