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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최고의 셰프들이 만드는 황홀한 만찬" 핑크마티니 내한

 

벚꽃 흐드러지는 4월의 밤, 서울은 포틀랜드발 마티니에 한껏 취했다. 지난 8일, 팝재즈 밴드 ‘핑크마티니’가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2년 만에 내한공연을 가졌다. 2010년과 2013년에 이은 세 번째 무대다. 리더 토머스 로더데일과 보컬 차이나 포브스를 필두로 한 12인조 밴드는 1997년 데뷔한 이래 클래식, 재즈, 보사노바, 아프리카 사운드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국내 팬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아 왔다.

 

 

공연은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시작됐다. 젊은 관객 뿐 아니라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중년 부부나 희끗희끗한 머리의 노년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핑크 마티니가 구현하는 풍부한 음악세계만큼 팬층 역시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듯했다.

 

“좋은 밤입니다. 우리는 포틀랜드에서 온 핑크마티니입니다. 한국에 다시 왔어요.”

 

토머스 로더데일의 어눌하지만 정성 어린 한국어 인사와 함께 검은 원피스를 입은 차이나 포브스가 화려하게 등장하며 쇼는 시작됐다. 1,2부에 걸쳐 약 두 시간 가량 진행된 공연은 고급 연회장에서 최고의 만찬을 맛보는 듯한 공감각적 활홀함을 안겨 줬다. 로더데일과 포브스, 두 수석 요리사를 중심으로 각 분야 최고의 셰프들이 한 데 모여 만든 세계 각국의 요리를 골라 먹는 기분이랄까.

 

 

핑크마티니의 대표곡 중 하나인 "Hey Eugene"

 

이번 공연은 재즈, 월드뮤직, 엔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핑크마티니의 히트넘버들로 꾸려졌다. 1부에서 “Sympathique”, “Ich dich liebe”, “Mayonaka no bossa nova”, “Hang on Little Tomato” 등 상큼하고 아기자기한 곡들로 입맛을 돋웠다면, 2부에서는 “Lilly”, “Let‘s Never Stop Falling in Love”, “Hey Eugene” 등의 곡들로 보다 농익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디저트처럼 달콤했던 앵콜곡 “Que Sera, Sera”는 활홀한 만찬의 정점을 찍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핑크마티니의 세 번째 내한공연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재즈에서는 흔치 않게 스탠딩 공연으로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스탠딩석에 대한 의문은 곧 느낌표로 바뀌었다. 관객들을 춤추게 하는 핑크마티니의 에너지는 올림픽홀 전체를 하나의 댄스홀로 손쉽게 변모시켰다. 공연 중 “무대에서 함께 춤추자”는 로더데일의 제안에 스탠딩석은 물론 2층 객석에 있는 관객들까지 무대 위에 뛰어 올라 ’작은 오케스트라‘의 리듬에 몸을 맡겼다. 지난 내한공연 당시 예술의 전당마저 무도회장으로 만들었다는 그들의 소문이 현실이 되는 자리였다.

 

팝재즈 밴드 핑크마티니 ⓒADAM LEVEY

 

 

관객과 소통하려는 핑크마티니의 애정이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로더데일은 "결코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다"라며 셋리스트 중 한 곡을 관객과 함께 연주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그는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환상곡 F단조를 이용한 곡 “Ou Est Ma Te”를 연주하기 위해 객석을 향해 러브콜을 요청했고, 한 여성 관객이 달려 나와 로더데일과 함께 수준급 피아노 연주 실력을 뽐냈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된 이 작은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완벽에 가까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평일 저녁 회사일로 지친 몸을 이끌고 1시간을 달려 온 직장인에게도, 오랜만에 봄밤 나들이에 나선 노년 부부에게도, 이제 막 사랑을 꽃피운 젊은 연인에게도 핑크마티니의 음악은 아주 특별한 에너지로 다가왔으리라. "한국 팬들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관객"이라며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치던 핑크마티니에게도 이날의 무대는 아주 특별한 추억으로 남지 않았을까. 다시 봄 내리는 밤, 그들의 무대를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