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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사이드 공연후기] 꿈의 문을 훔쳐 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관에 들어가 불빛이 꺼지는 순간은 마술적인 느낌이 든다. 순간 사방이 조용해지고 커튼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아마 커튼은 붉은색이리라. 그러면 당신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 갈무리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말했다. 영화를 보는 행위란 다른 세계, 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꿈속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개연성과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이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고 기괴하며 모호하지만 깨고 싶지 않은 꿈. ‘컬트의 제왕’이라 불리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역시 해석하려 들지 않아도 커튼이 올라가는 순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비현실적 경험에 가깝다.

 

다크사이드의 공연을 마주하며 린치의 영화를 떠올린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앞서 다크사이드 소개 기사(괴짜들의 멜랑콜리아 Darkside)에서도 언급했듯 니콜라스 자가 인터뷰를 통해 “데이비드 린치의 괴짜스러움”에 대한 애정을 밝힌 것처럼 그의 음악세계는 무의식적으로 린치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치밀한 구상에 의해 ‘의도된’ 기괴함이 데이비드 린치를 떠올리게 했다. "야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에 가까웠던 다크사이드의 공연은 잘 편집된 한 편의 영화요, 한 여름밤의 꿈이었다.

 

 

 ⓒKIMHAZE PHOTOGRAPH

 

 

지난 23일 저녁 8시, 비가 추척추적 내리는 서늘한 여름날 홍대 롤링홀에서 다크사이드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공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었으나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공연장 주변은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주최측인 Fake Virgin이 직접 제작한 Darkside 티셔츠를 입은 이들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이날 약 350명의 팬들이 롤링홀을 방문했다.

 

적당히 스모그가 피어올라 몽환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이날 공연은 니키타 콰심(Nikita Quasim)의 오프닝 무대로 시작됐다. 가면을 쓴 채 무대 위에 올라 세련된 디제잉을 선보인 그녀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현재 다크사이드 공연팀의 조명 엔지니어를 담당하고 있다. 오프닝 공연 동안 니콜라스 자는 그의 완벽주의를 방증하듯 대기실이 아닌 프론트(FOH)에서 사운드를 점검하고 있었다고 한다.

 

▲ Nikita Quasim의 오프닝 무대                             ⓒKIMHAZE PHOTOGRAPH

 

다크사이드의 본 공연은 8시 50분이 다 되어서야 시작됐다. 온통 어둠, 적막 가운데 구름 사이에 뚫린 구멍 사이로 비추는 태양빛 같은 백열 조명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공연은 약 80분간 쉼없이 진행됐는데 사운드라는 원소를 치밀하게 조율하고 결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들을 목격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공연은 철저하게 그들의 정규앨범 <Psychic>의 재현이었다. 안타깝게도 Daft Punk의 'Get Lucky‘라든지 특정 커버곡을 다루지는 않았으나 이것 역시 완전하게 계획된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초반 30분 간은 니콜라스 자와 데이비드 해링턴이 들려주는 공연 전체의 전주곡과 같았다. 주거니 받거니 다소 편안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사운드를 시도해보며 가장 잘 맞는 소리를 찾아 가는 느낌이랄까. 관객들 역시 큰 움직임보다는 어깨를 들썩이거나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다크사이드가 만들어나가는 그루브에 몸을 맡겼다.

 

 ⓒKIMHAZE PHOTOGRAPH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갈 무렵 <Psychic> 수록곡인 ‘Heart'를 시작으로 귀에 익은 곡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흥분과 기대도 한껏 달아올랐다. ’Freak Go Home‘, ’Paper Trails‘, ’The Only Shrine I've Seen‘, ’Metatron‘에 이어서 앨범의 초반 11분을 장악하는 ’Golden Arrow'이 이 완벽한 시나리오의 엔딩을 장식했다.

 

다크사이드의 라이브 공연은 Fake Virgin이 소개한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는데 그 우주란 한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상태는 아니었다. 그보다 어디선가 운석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혹은 정체불명의 우주괴물이 다가올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모험에 가까웠다. 공연이 정점을 향해 다가갈수록 우주의 불안함, 광대함, 동시에 비트의 격렬함도 커졌는데 덕분에 공연장은 이따금씩 이어가즘(eargasm)에 정신을 잃은(?) 관객들의 작은 댄스홀이 되곤 했다.

 

 

 

 ⓒKIMHAZE PHOTOGRAPH

 

하지만 공연을 보는 내내 무대 위 두 남자의 은밀한 대화를 ‘훔쳐’ 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아무리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한다고 해도 결국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처럼 말이다. 물론 장르의 특성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을 테지만 무대에서 뮤지션과 관객이 나누는 에너지란 공연을 만드는 이들의 성격적인 면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공연 내내 니코가 관객을 향해 건넨 말이라곤 “쇼에 와 줘서 감사하다” “이제 마지막 한 곡 남았다” 정도의 인사치레 수준이었다. 해링턴 역시 객석보다는 니코를 향한 몸을 튼 채 연주를 이어나갔다. 앵콜 요청조차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영화가 훌륭했다고 해서 커튼콜을 기대할 수 없듯이. 분명 하나의 공간에서 동일한 사운드를 느끼며 몸을 흔들고 있지만 무대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완벽한 공연을 향한 다크사이드의 의중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러나 생각건대, 비교적 단순한 공연장의 구조가 그러한 느낌을 강화하지는 않았을까? 물론 롤링홀 자체는 구현할 수 있는 사운드의 수준도 높은 편이고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하는 훌륭한 공연장 중 하나다. 하지만 일반적인 공연장의 구조가 이번 공연과 같은 싸이키델릭 일렉트로닉 뮤직의 제맛을 보여주기에 최적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동일한 사운드라도 어떤 장소에서 마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틀에 박힌 일상적인 공연장보다는 동굴 느낌이 나는 음산한 분위기라든지, 혹은 별밤 아래 있는 것만 같은 환상을 주는 야외 공연장에서 다크사이드라는 우주를 유영했더라면 무대 위 세계로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한정된 자원과 짧은 준비기간동안 공연기획업체가 매번 장르와 공연의 특성을 살려 공연장을 연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정체된 공연 문화를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되고 변화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KIMHAZE PHOTOGRAPH

 

객석과의 소통은 조금 부족했더라도 두 뮤지션이 보여준 호흡은 탁월했다. 안경을 쓴 채 다소 심각한 얼굴로 비트를 채워나가는 그는 분명 훌륭한 프로듀서였다. 누군가는 니콜라스 자의 옆태, 뒤태, 등빨(?)을 공연의 백미로 꼽기도 했는데 특유의 저음으로 ‘Paper Trails’를 부를 때는 여성 팬들의 환호 소리도 함께 높아졌다. 해링턴 역시 니코가 남긴 소리의 공간을 자신만의 색깔로 채워나가며 한 여름밤의 꿈을 완성했다.

 

쇼가 끝났다. 좋은 영화를 본 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도 자리를 뜨기 어려운 강력한 여운이 몰려왔다. 동시에 꿈을 꾼 뒤 “그 장면의 의미를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봐도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과 같은 좌절감과 생경함이 급습했다. 문득 속편이 간절해진다. '속편은 오리지널보다 못하다'고들 하지만 언제든 기꺼이 꿈의 문을 열고 그들이 만들어낼 고상한 광기에 취할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