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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기] "가야금과 플라멩코가 썸타는 밤" 루나의 발렌타인 이브 콘서트

 

국악과 플라멩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둘의 만남은 ‘신세계’였다. 플라멩코의 경쾌한 리듬 속에 가야금 가락은 춤을 추듯 스며들었다. 입춘은 한참 지났지만 바람 끝 겨울을 머금은 지난 13일,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가야금 연주자 루나와 플라멩코 독일 출신의 기타 듀오 티에라 네그라(Tierra Negra)가 서울 강남에 위치한 베어홀에서 아주 특별한 공연을 가졌다. 이른바 루나의 발렌타인 이브 콘서트. 지난해 유럽 투어를 함께 한 두 팀이 올해 한국에서 선보인 첫 번째 무대였다.

 

 

출처 : http://www.lunaxmusic.com

 

 

오후 8시부터 100분가량 이어진 공연은 크게 2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루나가 밴드로 활동하는 ‘루나와 시간여행자들’이 무대의 흥을 돋웠고, 2부에서는 티에라 네그라의 단독 공연 및 루나와의 합동 공연이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만석은 아니었지만 어린 꼬마부터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공연은 루나와 시간여행자들이 연주하는 지미 헨드릭스의 <매닉 디프레션(Manic Depression)>으로 막을 열었다. 약 반년 만에 다시 만난 밴드는 초창기와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지미 헨드릭스를 연상케 하던 키보드기타리스트 대신 여성 키보디스트가 영입됐고 베이시스트 역시 다른 연주자로 교체됐다. 록적인 느낌이 강했던 과거에 비해 한층 재지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루나와 시간여행자들 ⓒJongkyu Kim

 

이어서 루나의 자작곡인 <호박마차>와 우리 민요 <새타령>이 연주됐다. 전에는 다소 강렬했던 기타 사운드에 가야금 소리가 묻힌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제 건반의 어시스트로 가야금이 곡 전체를 리드하고 있었다. 특히 <새타령> 중 선보인 가야금 솔로 연주는 스펙타클한 가야금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1부의 마지막은 루나의 또다른 자작곡이자 가야금의 흥겨움과 서글픔을 함께 담은 <하늘의 궁전>으로 마무리됐다.

 

 

가야금과 플라멩코의 특별한 만남  

 

2부는 티에라 네그라의 단독 공연으로 시작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옷으로 맞춰 입은 두 남자의 출현에 객석에는 순간 낯선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나 말 그대로 기타를 ‘갖고 노는’ 티에라 네그라의 수려하고도 현란한 연주는 이내 관객들을 압도했다. “눈빛만 봐도 알 수가 있어”라는 노랫말이 떠오를 만큼 연주 내내 눈빛을 주고받으며 기타를 튕기는 그들의 완벽한 호흡에서 오랜 시간 아로새겨진 내공이 느껴졌다.

 

약 30분 가량 티에라 네그라는 그들의 앨범에 담긴 자작곡을 선보였다.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그들의 연주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 테크닉은 뛰어나지만 결코 과하지 않으며 흐르는 물처럼 스치는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연주를 이어갔다. 특히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 숲을 거닐다가 쓰게 되었다는 <In the Crystal Forest(En el Bosque de Cristal)>는 12월의 태양 아래 나뭇가지 사이로 눈이 부서져 내리는 듯한 신비로운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지난해 독일 공연에서 루나와 티에라 네그라가 함께 연주하는 <옹헤야>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티에라 네그라와 루나의 합동 무대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리틀 윙(Little Wing)>을 비롯해 티에라 네그라의 자작곡은 물론 우리 민요 <옹헤야>를 함께 연주했다. 갸야금이 함께 한 흥겨운 플라멩코도 인상 깊었지만 플라멩코 기타가 가미되어 몽환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내던 <옹헤야>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5년 전 중국 상하이에서 같은 무대에 서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된 그들은 서로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연락해오다가 본격적으로 지난해부터 유럽과 한국 등지에서 합동 공연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루나는 “티에라 네그라와의 공연이 기억에 남는 최고의 공연 중 하나”라면서 “무대를 따뜻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티에라 네그라와 루나의 합연 ⓒJongkyu Kim

 

루나는 공연 도중 관객 중 한 명에게 포크렐레(포크기타와 우쿨렐레를 결합한 악기)를 선물하는 깜짝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행운의 주인공인 김태경(24세)씨는 “친구의 추천으로 공연에 오게 됐는데 새로운 공연에서 이런 선물까지 받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평소 라이브 공연을 즐겨 본다는 이철환(71세)씨는 “오늘 공연은 아주 새로운 맛이 있다”며 “우리 악기가 다양한 색깔로 다양한 장르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루나와 티에라 네그라는 이번 공연을 계기로 공동 앨범과 유럽 투어를 기획하고 있다.